-
열한 번째 편지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2022. 11. 29. 14:26반응형
- 열한 번째 편지 -
유급제 시행이 조심스러운 이유
배철민 선생님께
배선생님~ 오랜만에 편지 합니다. 우리 전학공에서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에 관하여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이해가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두려움의 기저에는 무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편지를 주고 받고, 공부를 하면서 다시 한번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교학점제는 왜 ‘유급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일까요? 교육부에서 ‘유급제’ 도입에 관해 매우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 열한 번째 답장 -
유급제가 공포스러운 이유
박종욱 선생님께
박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유급제를 시행하면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가 강력한 구속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미이수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될 것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유급제가 있으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동기를 강력하게 높여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유급제는 일종의 ‘벌’로써 학생들이 절대적으로 ‘미이수’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라고 믿는 것이죠.
그런데 왜 ‘유급제’를 시행하지 않는 고교학점제를 우리나라는 택했을까요? 바로 유급제의 부작용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유급제의 부작용 첫 번째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로 과연 그 학생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입니다.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 이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과연 학교가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데 적합한 평가도구를 가지고 있느냐에 관해서 많은 사람들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지 선다형, 서술형 문항으로 학생들을 미이수하고, 유급시켜서, 결국 졸업을 못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부정적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특정 계층의 배제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회 경제적 지위가 학업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급제가 자칫하면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자녀에게만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낳고, 사회 계층간 이동을 막는 유리 천장 효과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셋째로 실제 유급제가 정말로 학업 성취 향상을 위한 강력한 동기로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이 작용할 것인가에 관한 회의적인 의문입니다. 수포자, 영포자와 같은 미도달 학생이 되는 것은 단순히 유급제와 같은 강력한 ‘채찍(?)’이 없어서 그런걸까요? 예를 들어서 어떤 학생이 수포자가 되는 과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이해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강요로 시작된 양만 많이 풀고, 진도만 빨리 나가면 된다는 식의 문제 풀이 강요의 경험. 학원에서 선행학습하여서 학교에서 수학 실력을 뽐냈지만,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따라갈 수 없는 수준에 좌절한 경험. 변별력이 지나치게 높은 수학 시험 때문에 좌절했었던 경험. 용어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고, 수학 공식을 외우도록 강요당했던 경험. 교사도 수포자를 포기하는 수업 분위기. 자신에게 열등감을 심어주는 수학 시험의 경험. 수업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혼자만 외딴 곳에 있는 소외자의 경험 등 수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왔는데, 단순히 ‘유급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갑자기 공부가 너무 재밌고, 열심히 할까요? 그리고 하물며 ‘유급제’ 때문에 수학 공부를 좋아하게 될까요? ‘유급제’는 모든 탓을 학생에게 돌릴 수 있는 좋은 구실이 아닐까요?
우리의 수업은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지는 않나요? 재도전할 기회를 주는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나요? 교사들은 초·중·고등학교를 지나오는 동안 수학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섬세하게 챙기고 돌봐주었을까요? 사실 방치되다시피 한 것은 아닐까요? 진도를 나가는 것이 교사의 본분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에게서 수학을 배웠던 학생들은, 마치 두발 자전거도 못타는데, 한 발 자전거 시험을 본다는 느낌을 가지지는 않았을까요?
상대평가라는 사활을 건 전장에서, 능력주의를 정당하하는 교육 분위기 속에서 소외된 학생들에 대한 정서적·심리적·교육적 지원을 할 생각은 안 하고, 오직 지원적 관점이 아닌 징벌적 관점에서 ‘유급제’로 이 모든 것을 단 칼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왜 위험한지 곰곰하게 곱씹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급제’로 진급을 하지 못한 학생들을 과연 현장의 학교들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전체 교육의 질이 위협받지는 않을까요?
회의적 담론은 쉽지만, 건설적 해답을 찾는 과정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해답에 대한 고민은 저도 아직 자신이 없어서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만 쓰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철성고 전학공 파이팅입니다.
반응형'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 번째 편지 (0) 2022.11.29 아홉 번째 편지 (0) 2022.11.25 여덟번 째 편지 (0) 2022.11.21 꼼수(?)를 쓰면 어떡하나요? (0) 2022.11.18 2025년부터 모든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고, 공통과목(필수과목)은 성취평가제와 9등급제를 병기한다고 한다. 그런데 학기 중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로 인해 내신의 플러스 효과가 .. (2) 2022.11.15